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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이상퇴직자

디지털 시대 퇴직자가 겪는 낯선 언어들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중장년층이 느끼는 소외감은 단순히 기기 사용의 어려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언어의 단절’이다.

과거에는 통신 기술이나 업무 처리 방식이 바뀌더라도 기본적인 언어 체계는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어 자체가 너무 빠르게 바뀌며,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는 속도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디지털 태생 세대가 있고, 반대편에는 퇴직 이후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퇴직자가 있다.

퇴직 후에도 사회와 소통하고 싶은 중장년층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깊은 고립감을 느낀다.

‘로그인’, ‘백업’, ‘디지털 워크플로’, ‘알고리즘’ 등 일상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들이 이제는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진다.

이 글은 퇴직자가 디지털 시대에 마주한 ‘언어 장벽’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는 심리적 단절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다루고자 한다.

지금까지 다뤄지지 않은 시선에서 ‘언어’라는 키워드로 퇴직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독창적인 시도이며,

그 자체로도 충분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낯선 언어들

 ‘업데이트’라는 단어조차 낯선 퇴직자들

퇴직자 A 씨는 어느 날 스마트폰에서 “보안 업데이트를 설치하세요”라는 문구를 보고 공포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에게 ‘업데이트’란 기존의 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덮어씌우는 위협적인 과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퇴직자가 디지털 기기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메시지조차 해석하지 못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단어 하나하나가 전문 용어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동기화’, ‘계정 연동’ 같은 표현은 일반 사용자라면 쉽게 넘길 수 있지만,

기술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퇴직자에게는 난해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이런 언어들은 ‘기술적인 기능’ 이전에 ‘이해되지 않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며, 결과적으로 사용을 회피하게 만든다.

디지털 세상이 그들에게 차갑고 배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디지털 언어가 만드는 심리적 고립감

단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디지털 언어는 퇴직자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장벽'이 된다.

은퇴 후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해진 상황에서, 그나마 유지하고 싶던 자녀나 손주와의 대화마저 어려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주가 “디스코드에서 친구랑 듀오로 게임을 했어요”라고 말하면, 퇴직자는 이 문장을 해석조차 하지 못한다.

‘디스코드’, ‘듀오’, ‘게임’이라는 단어 모두가 낯설고, 그 낯섦은 결국 대화 단절로 이어진다.

언어를 통해 이어지는 가족 간의 유대감이 언어로 인해 끊기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퇴직자는 점점 더 고립되며, 디지털 기술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게 된다.

 퇴직자 디지털 언어 교육, 왜 필요한가

기술 교육은 지금까지 대부분 '기능 중심'이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법, 앱을 설치하는 법, 키오스크 조작법 등은 가르치지만, ‘언어’를 가르치려는 시도는 드물다.

그러나 기능을 배우기 전에 먼저 그 기능을 설명하는 ‘용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업’이라는 단어를 ‘자료 복사본을 만들어 저장하는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클라우드’는 ‘인터넷 공간에 파일을 보관하는 장소’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어의 의미만 아니라 그 단어가 어디에서 쓰이고,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를 설명하는 서술형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현재 일부 지자체나 복지기관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커리큘럼은 기능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

‘언어’ 중심의 교육이 병행될 때, 퇴직자가 보다 자연스럽게 디지털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언어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 제안

디지털 언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퇴직자 대상 ‘디지털 언어 사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용어와 의미, 실제 사용 예시를 종합적으로 안내할 수 있다.

기존의 IT 용어 사전은 대부분 전문가를 위한 것이며, 일반인을 고려하지 않은 구성이 많다.

퇴직자를 위한 전용 사전은 시니어 눈높이에 맞춰 ‘이해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둘째, 자녀 세대와의 ‘디지털 언어 교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손주가 조부모에게 자신이 자주 쓰는 디지털 용어를 설명해 주는 가족 프로젝트를 유도하면,

자연스러운 세대 간 소통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언어 교육을 넘어, 가족 간 정서적 교류까지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셋째, 공공기관 웹사이트와 안내 시스템에도 ‘쉬운 말 버전’을 도입해야 한다.

‘디지털 접근성’은 단순히 버튼 크기나 색상 대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접근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낯선 단어가 아닌 친숙한 말로 구성된 UI는 퇴직자에게 훨씬 친절하게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