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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이상퇴직자

퇴직 후 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60대

2025년 대한민국은 고속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며 무인화 기술이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 분식집에서도 키오스크(무인 주문기계)가 운영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디지털 전환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60대 이상의 퇴직 세대는 새로운 기술을 마주하며 낯섦과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어느 날 오후, 서울의 한 카페 앞에서 키오스크 앞에 서성이는 한 어르신을 목격했다.

주문을 하려다 몇 번이고 화면을 터치하고는 결국 돌아서는 그의 모습은 한 장면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디지털 문맹’이라는 단어는 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표현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본 글에서는 퇴직 후 키오스크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60대의 현실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문제와 그 해결 방안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키오스크

기술 속도로부터 소외된 세대의 현실

60대는 산업화 세대와 정보화 세대의 중간에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들은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전을 성인 이후에 경험했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학습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직장에 있을 때는 업무 시스템을 통해 어쩔 수 없이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퇴직 후에는 그러한 접점마저 사라진다.

특히 공공기관, 병원, 카페, 영화관, 심지어 약국까지 키오스크가 보편화되면서

일상에서 기술의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하고 멈추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교육에 참여하는 고령자는 전체의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자신이 기술에 ‘뒤처졌다’는 자각만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원활하지 않다고 느낀다.

결국 이들은 기술로 인해 더 자유롭지 못한 ‘기술 약자’가 되고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의 침묵: 단절된 커뮤니케이션

퇴직 후 맞이한 자유는 한편으로는 사회와의 연결 고리가 약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장이라는 커뮤니티에서의 관계가 끊기면, 이들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소통의 기회가 줄어든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한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서도 기계를 거쳐야 하기에,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키오스크는 편리함을 주는 도구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접촉을 제거하는 역할도 한다.

음성 인식이나 화면 크기, 폰트 등의 설계는 대부분 젊은 세대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고령층에게는 진입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특히 60대 초반은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기계 앞에서 당황하는 자기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게 싫어한다.

이로 따라 ‘내가 이 사회에서 점점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구나’라는 자책감까지 느끼게 된다.

단순한 주문 실패가 자존감 상실로 이어지는 현실은, 사회적 고립감을 가중하는 원인이 된다.

 제도적 대안과 기술의 포용성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기술의 포용성이다. 키오스크 개발 과정에서 고령층의 사용성을 반영한 디자인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음성 안내 기능 확대, 터치 민감도 조절, 글자 확대 모드, 화면 색상 대비 조정 등이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제도적 교육 확대이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은 매우 유의미한 시도지만,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유인책이 부족하다.

퇴직자 커뮤니티나 노인 복지관과 연계한 순회 교육, 또는 멘토-멘티 제도를 활용한 1:1 교육 프로그램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기업 측에서도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키오스크에 ‘도움 요청 버튼’을 설치하거나, 일정 시간대에는 직원이 직접 응대하는

시스템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용적 기술과 제도의 결합만이 고령층을 사회 안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다시 걷기 위해

퇴직 후 키오스크 앞에 선 60대는 단순히 ‘기계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수십 년간 사회에 헌신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해온 이들이고, 여전히 살아있는 경험과 지혜를 지닌 존재들이다.

이들이 사회 속에서 기술로 인해 멈추게 되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의 문제다.

기술은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 글은 단지 한 명의 어르신이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는 장면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우리가 모두 마주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 역시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묻고, 설계하고, 연결해야 한다.

기술 앞에서 모두가 멈추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